나콘랏차시마 (Nakhon Ratchasima)
코랏 고원의 서쪽 끝에 있으며, 역사적으로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에 자리하고 있다. 코랏(โคราช)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나콘랏차시마는 또한 나콘랏차시마 도시권의 중심이다.
고고학적인 증거는 이곳에 두 고대의 마을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들은 이후 세마와 나콘라쯔로 명명되었고 현재의 나콘랏차시마(꼬랏)에서 서쪽으로 32km 떨어진 숭는 군 일대에 해당한다. 14세기 이전에 나콘랏차시마 지역은 크메르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유타야 왕국의 나라이 왕(1656~1688)은 아유타야의 북동쪽 변경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꼬랏의 건설을 명령했다. 나콘랏차시마는 이 때부터 왕국의 '2급 도시'로서 옛 아유타야의 기록과 법률 문서에 언급된다. 지배자는 대를 이어 도시를 통치했다. 나콘랏차시마는 아유타야의 내부 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방콕 시대가 시작될 때부터 나콘랏차시마는 왕국의 라오스와 크메르의 '봉신'들을 감독하는 북동쪽 변경의 가장 큰 요새가 되었다.
도시는 1826년에 라오스를 시암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비엔티안의 왕 아누봉의 공격을 받았다. 이 때의 유명한 인물인 타오 수라나리는 지역의 영웅으로서 그를 기념하는 조각상이 꼬랏 중심가에 세워져있다.
나콘랏차시마는 19세기 후반의 행정 개혁 후에도 계속해서 북동부 지방의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였다. 20세기 초에 북동부 지방(이산)에 처음 철도가 개통하였다. 나콘랏차시마는 이 지방 철도의 중요한 교차점이 되었다.
1932년의 혁명으로 절대군주제가 종식된 후에 1933년 10월에 도시는 방콕의 새로운 정부에 대항하는 폭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 때 나콘랏차시마는 미군 육군의 기지였다.
지도 - 나콘랏차시마 (Nakhon Ratchasima)
지도
나라 - 태국
태국의 국기 |
타이족은 약 11세기 즈음에 중국 남서부에서 동남아 반도로 이주해왔다. 이후 인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몬 왕국, 크메르 제국, 말레이 군주국들이 등장하여 현재 태국계 왕조인 수코타이 왕국, 란나 왕국, 아유타야 왕국과 경쟁을 별였다. 명사에 따르면 14세기말 원나라에 이어 명 태조가 섬라곡국(暹羅斛國)을 섬라국(暹羅國)으로 인정하여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유타야 왕국의 시기인 1511년부터는 포르투갈인들과 만나며 유럽과의 교역을 시작하였고, 아유타야 왕국은 15세기 즈음에 전성기를 맞아 지역 강국으로 번성하였다. 허나 왕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1767년에 버마-태국 전쟁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탁신 장군이 왕국을 재통합하는 데에 성공했고, 단명한 톤부리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탁신 장군은 폭정으로 신망을 잃었고, 현재 짜끄리 왕조의 시조인 풋타엿파쭐라룩이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왕조는 현 국왕인 라마 10세까지 왕조를 이어오고 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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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B | 태국 밧 (Thai baht) | ฿ | 2 |